초등 1학년 친구 고민, 어디까지가 정상일까 (친구관계 시리즈 ①)
학교생활이 4개월째에 접어들면 아이 입에서 친구 이야기가 부쩍 늘어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말을 듣게 됩니다.
"엄마, 오늘 나 친구 없었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혼자 있었던 걸까, 혹시 따돌림은 아닐까.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아이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과 다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친구 고민, 어디까지가 정상일까요?
초등 1학년 친구 관계는 부모가 가장 예민해지는 영역입니다. 처음 겪는 일이라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걱정할 일인지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는 "오늘 친구 없었어"라는 아이의 말부터 장난 대응까지, 발달심리 기준으로 두 딸 엄마가 정리했습니다. 이 나이 친구 관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부모가 어디까지 개입하면 좋을지 함께 살펴봅니다.

이 나이 아이에게 친구란 무엇일까
초등 1학년에게 친구란 "지금 같이 노는 사람"입니다
발달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초등 1~2학년 아이가 생각하는 친구의 기준은 어른과 다릅니다. 이 나이 아이에게 친구란 신뢰나 비밀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지금 함께 놀고 있는 사람입니다. 같은 활동을 함께하는 것 자체가 친구의 정의입니다.
아동의 우정 개념을 연구한 비글로우와 라가이파(Bigelow & La Gaipa, 1975)에 따르면, 이 연령대 아이들이 꼽는 친구의 첫 번째 기준은 '함께하는 활동'이었습니다. 친밀감이나 신뢰 같은 기준은 더 큰 다음에야 등장합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납니다.
- 어제까지 제일 친하다던 아이를 오늘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 오늘 처음 같이 논 아이를 "내 친구"라고 소개합니다.
- 늘 같이 놀던 친구가 결석하면 "오늘 친구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경우가 바로 부모를 놀라게 하는 그 말입니다. 아이에게 친구란 '지금 같이 노는 사람'이라서, 그 사람이 없는 날은 정말로 친구가 없는 하루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
아직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읽지 못하는 나이입니다
발달심리학자 셀먼(Selman, 1980)의 우정 발달 이론에 따르면, 6~8세 아이는 타인의 관점을 인식하기 시작하지만 상대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단계입니다. 내가 기분 나쁘면 상대도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하고, 내가 싫다는 티를 살짝 냈으니 상대가 알아챘을 거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싫어"라고 강하게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줄 거라 믿고, 막상 상대가 계속 장난을 치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해 속상해합니다.
친구를 사귀는 데도 '능력'이 필요합니다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는 또래와 안정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아이에게 몇 가지 능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감정과 충동을 조절하는 능력, 원하는 것이 바로 이뤄지지 않아도 기다릴 수 있는 능력, 교실의 규칙을 지키는 능력입니다.
핵심은 이 능력들이 아직 발달하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이 나이의 갈등은 아이가 잘못됐다는 신호가 아니라, 배우고 있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일입니다.
참고로 초등 1학년 친구 관계만을 콕 집어 조사한 국내 실증 연구는 많지 않습니다. 다만 친구 개념이 나이와 함께 발달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반복 검증된 이론입니다. 이 글은 그 이론을 바탕으로, 두 딸을 키우며 직접 겪은 경험을 더해 정리한 것입니다.
우리 집 이야기
에피소드 1 · "오늘 친구 없었어"의 진짜 의미
우리 집 1학년 아이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늘 같이 노는 친구가 둘 있는데, 그날은 두 친구가 체험학습으로 학교에 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걱정됐지만, 천천히 물어봤습니다. "그럼 쉬는 시간 말고 수업 시간엔 뭐 했어?" 알고 보니 모둠활동에서는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 잘 지냈더군요. 아예 혼자였던 게 아니라, 늘 함께하던 두 친구가 없으니 쉬는 시간이 허전했던 것입니다.
"친구 없었어"는 사실 "내 친구들이 오늘 없었어"라는 뜻이었습니다.
에피소드 2 · 장난이 반복될 때
또 다른 고민도 있습니다. 같이 노는 친구 중에 장난을 많이 치는 아이가 있어서, 이름을 이상하게 바꿔 부르거나 놀리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우리 아이는 싫다는 표현을 강하게 하는 편이 아니라서, 그 친구는 같은 장난을 계속 반복합니다. 지난번엔 놀리기였고 이번엔 이름 바꿔 부르기로, 종류는 바뀌어도 패턴은 이어집니다.
솔직히 저도 아직 정답을 찾는 중입니다. "왜 싫다고 말 못 해!"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오지만, 그건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앞서 본 것처럼 이 나이 아이는 '싫다는 신호를 약하게 보내면 상대가 모를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아직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나이 친구 문제에서 부모의 역할은 해결사가 아니라 관찰자이자 연습을 돕는 코치입니다.
1.감정을 먼저 받아주세요
아이가 친구 이야기를 꺼내면 사실 확인보다 감정 확인이 먼저입니다. "혼자 있었어?"보다 "많이 심심했겠다"가 먼저입니다.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도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에 감정을 먼저 받아줄 것을 강조합니다. 감정이 받아들여져야 아이가 다음에도 마음을 엽니다.
2.사실과 감정을 분리해 물어보세요
"왜 싸웠어?"라고 물으면 아이는 추궁당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신 "무슨 일이 있었어?", "그때 기분이 어땠어?"처럼 사실과 감정을 나눠 물으면 아이가 상황을 스스로 정리하게 됩니다.
3.'나 표현법'을 집에서 연습하세요
싫은 걸 싫다고 말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집에서 상황을 다시 꺼내 "그때 뭐라고 하면 좋았을까?" 하고 짧은 문장을 함께 만들어보세요. "그거 싫어", "그렇게 부르지 마" - 한 문장이면 충분합니다. 거창한 설명보다 짧고 분명한 한마디가 이 나이 아이에게 더 쉽습니다.
4.스스로 해결할 기회를 주세요
임상심리 전문가 조선미 교수는 아이가 또래 갈등을 스스로 겪고 풀어보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부모가 너무 빨리 나서면 아이는 그 경험을 잃습니다. 대신 김효원 교수의 조언처럼, 아이가 편하게 느끼는 친구와 따로 놀 시간을 만들어주는 등 어울릴 기회와 환경을 마련해주는 역할은 부모가 할 수 있습니다.
이것만은 하지 마세요
"왜 싫다고 말 못 해?"
아이는 이미 나름대로 표현했을 수 있습니다.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을 뿐, 아예 말하지 않은 게 아닐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아이에게 "내 잘못이구나"라는 느낌만 남깁니다.
"그 친구랑 놀지 마"
당장은 해결책처럼 보이지만, 아이의 관계 선택권을 부모가 가져오는 것입니다. 아이는 스스로 거리를 조절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잃습니다.
부모가 직접 상대 아이나 부모에게 항의하기
심각한 사안이 아니라면, 부모가 직접 나서는 것은 작은 갈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려가 된다면 상대 부모가 아니라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비교하기 - "언니는 친구 많잖아", "○○는 여러 친구랑 잘 놀잖아"
형제든 또래든, 비교는 아이에게 "나는 부족한 아이"라는 메시지로 남습니다. 특히 또래 비교는 아이가 매일 학교에서 마주하는 대상이라 더 깊게 박힙니다. 친구를 사귀는 속도와 방식은 아이마다 다르고, 이 나이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이 부분이 걱정되셨나요?
초등 1학년인데 아직 단짝 친구가 없어요. 괜찮을까요?
이 시기 친구 관계는 아직 유동적인 단계입니다. 특정 단짝보다 여러 아이와 두루 어울리는 것이 이 나이엔 오히려 자연스럽습니다. 단짝은 보통 학년이 올라가면서 서서히 생깁니다. 지금 단짝이 없다는 것이 문제의 신호는 아닙니다.
아이가 친구한테 맞춰주기만 하는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을 말할 줄 모르는 걸까요?
6~8세는 갈등 상황에서 상대에게 맞추거나 피하려는 경향이 강한 시기입니다. 성격 문제라기보다 발달 단계인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서 "싫어", "나는 이게 좋아" 같은 짧은 표현을 반복해서 연습하면 도움이 됩니다.
친구 문제를 말하면 부모가 바로 나서서 해결해줘야 하나요?
아이가 이야기를 꺼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들어주는 것입니다. 해결책보다 "그랬구나, 속상했겠다"가 먼저입니다. 개입이 필요한지는 이야기를 다 들은 뒤 판단해도 늦지 않습니다. 반복적인 따돌림이나 신체적 위협이 아니라면, 아이가 스스로 해결해볼 기회를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마무리 - 전문가 도움이 필요한 신호
초등 1학년의 친구 갈등은 대부분 발달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입니다. 하지만 아래 신호가 2주 이상 지속된다면, 담임 선생님이나 전문가와 상담을 권합니다.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신호
- 등교를 강하게 거부하거나 학교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는 경우
- 특정 아이에 대한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경우
- 두통, 복통 같은 신체 증상이 등교 전마다 반복되는 경우
-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상태가 길게 이어지는 경우
[ 참고 자료 ]
셀먼의 우정 발달 이론
로버트 셀먼(Robert L. Selman)은 하버드 교육대학원 발달심리학자로, 아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능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연구했습니다. 이 능력에 따라 우정 개념이 5단계로 발달한다고 보았으며, 초등 저학년은 '같이 노는 사람이 친구'인 가장 초기 단계에 해당합니다.
Selman, R. L. (1980). The Growth of Interpersonal Understanding: Developmental and Clinical Analyses. Academic Press.
하버드 교육대학원 - Robert Selman 소개 ↗비글로우와 라가이파의 우정 개념 연구
브라이언 비글로우(Brian Bigelow)와 존 라가이파(John La Gaipa)는 6~14세 아동에게 '가장 친한 친구에게 기대하는 것'을 글로 쓰게 한 뒤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친구에 대한 기대가 나이에 따라 '함께 노는 것 → 공정함 → 신뢰와 공감' 순으로 발달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Bigelow, B. J., & La Gaipa, J. J. (1975). Children's written descriptions of friendship: A multidimensional analysis. Developmental Psychology, 11, 857–858.
ERIC 교육학 데이터베이스 - 논문 정보 ↗친구 사귀기에 필요한 능력 - 전문가 의견
서울아산병원 소아정신건강의학과 김효원 교수가 초등 1학년 사회성 발달에 대해 설명한 칼럼입니다.
서울아산병원 뉴스룸 - 초등학교 1학년 친구 사귀기 도와주려면 ↗